후안 다리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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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안 다리엔소는 '리듬의 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가로, 1900년 12월 14일에 태어났다. 1928년 자신의 악단을 결성하여 독특한 리듬을 강조하는 연주 스타일로 인기를 얻었으며, 로돌포 비아히, 풀비오 살라망카 등 뛰어난 피아니스트들과 협연하며 악단의 명성을 높였다. 날카로운 스타카토와 "소리 없는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다리엔소 스타일"을 확립하여 탱고를 국제적인 장르로 발전시켰다. 엘 비노 트리스테, 파시엔시아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1975년 마지막 녹음을 남기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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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다리엔소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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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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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00년 12월 14일 |
사망일 | 1976년 1월 14일 |
출생지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사망지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활동 기간 | 1928년 - 1975년 |
직업 | 지휘자,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 |
장르 | 탱고, 밀롱가 |
악기 | 반도네온, 바이올린, 피아노 |
경력 | |
레이블 | RCA 빅터 |
웹사이트 | |
웹사이트 | D'Arienzo - Tango has three things |
웹사이트 | Juan D'Arienzo - tango.info |
웹사이트 | Tango Orchestra Biographies. Juan d'Arienzo |
웹사이트 | JUAN D'ARIENZO |
2. 생애
후안 다리엔소는 1900년 12월 14일에 태어나 '리듬의 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인기 연예인이었다. 8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여 마스카니에게 배웠으며, 13세에 이미 바이올린 연주자로 데뷔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이후 재즈 밴드 등에서 활동하다가 1925년에 다시 탱고계로 돌아왔다.
1928년에는 자신의 악단을 결성하여 독특한 리듬을 강조한 산뜻한 연주 스타일로 인기를 얻었다. '피아노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가진 로돌포 비아히를 피아니스트로 영입하면서 악단의 명성이 빠르게 높아져 제1급 악단으로 성장했다. 이후 풀비오 살라망카, 후안 폴리토 등을 피아니스트로 맞이하며 악단의 변화를 꾀했다.
다리엔소는 고전적인 곡을 주로 연주했지만, 만년에는 유행곡도 많이 연주하여 시대의 변화에 따른 탱고의 변천을 보여주었다. 작품으로는 <엘 비노 토리스 테>, <파시엔시아> 등이 있다.
날카로운 스타카토를 사용한 "다리엔소 스타일"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유지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수많은 후계 악단, 팬, 평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후안 다리엔소는 찬반 양론이 격렬하게 대립할 정도로 강렬한 개성을 아르헨티나 탱고에 불어넣었고, 단순한 리듬 패턴에 불과했던 탱고를 하나의 장르로 승격시켜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했다.
2. 1. 초기 생애 (1900년 ~ 1928년)
1900년 12월 14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바르바네라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실업가였으며, 모친의 집안에는 음악 관계자가 많았다. 8세 무렵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13세에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대에는 극장오케스트라나 재즈 밴드 등에서 연주했지만, 1928년에 독립하여 Electra와 계약하고, 자신의 오르케스타(악단)를 조직했다. 그러나 곧 어려움에 처해 "어차피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해질 정도로 침체되었다. 공식 전속 피아니스트는 Luis Visca였지만, 1929년에 그만두었다. 이 외에도 여러 피아니스트들이 교체되었다.다리엔소는 피아노 1, 바이올린 4, 콘트라베이스 1, 반도네온 5로 구성된 오르케스타 티피카를 마지막까지 준수했던 악단 마스터로 알려져 있지만, 1920년대에는 피아노 1, 바이올린 3, 첼로 1, 반도네온 3, 콘트라베이스 1, 전속 가수 1로 참여했다. 다리엔소의 바이올린을 들을 수 있는 것은 1920년대뿐이다. 이 시기의 다리엔소 악단은 "없었던 것" 또는 "흑역사"로 치부하며 1935년부터 음반 목록을 정리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이 시기에 최소 43곡 이상의 테이크를 남겼으며, 생전의 복각도 있다. 2005년에도 1920년대 복각 CD가 등장하는 등, 재평가의 조짐이 있다.
이 시기에 라 쿰파르시타를 두 번 녹음했다. 한쪽은 Carlos Dante의 가창이지만, 다른 한쪽은 Raquel Notar의 낭송으로, 아이디어는 알프레도 데 안젤리스보다 앞섰다. 이 시기의 큰 특징으로, 기악 연주를 거의 녹음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 2. 다리엔소 악단 결성 및 초기 활동 (1928년 ~ 1930년대)
1928년 다리엔소는 자신의 악단(오르케스타)을 결성하여 Electra와 계약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어 "어차피 사라질 것이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침체되었다.[1] 초기 멤버는 피아노 1, 바이올린 3, 첼로 1, 반도네온 3, 콘트라베이스 1, 전속 가수 1로 구성되었다. 1920년대에는 다리엔소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을 수 있었으며, 최소 43곡 이상을 녹음했다. 이 시기에는 라 쿰파르시타를 두 번 녹음했는데, 한 번은 Carlos Dante의 가창, 다른 한 번은 Raquel Notar의 낭송으로 녹음했다.[1]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 대공황으로 탱고 악단의 활동 무대가 줄어들고 재즈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다리엔소는 탱고의 리듬에 집중하여 춤을 추는 사람들을 위한 격렬한 리듬을 새기는 연주 스타일을 만들었다. 이 스타일은 "전격의 리듬"으로 불렸고, 다리엔소는 "El rey del compás"(리듬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1]
1935년 7월 2일, 다리엔소는 RCA 빅토르와 전속 계약을 맺고 펠리시아노 라타사 작곡의 "HOTEL VICTORIA"(오텔 빅토리아)를 녹음했다. 1936년에는 피아니스트 로돌포 비아지를 영입하여 더욱 날카로운 리듬을 만들었다. 점적인 반도네온이 새기는 주선율에 바이올린의 선적인 오블리가토를 덮는 다리엔소 스타일이 이때 확립되었다. 이후 과르디아 비에하(고전곡)를 중심으로 연주하며 인기를 얻었고, 탱고계를 부흥시켰다. 이 시기는 다리엔소 악단의 제1기 황금기로 여겨진다.[1]
1938년 7월, 비아지가 독립하면서 피아니스트가 후안 폴리토로 교체되었지만, 멤버 교체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다리엔소와 멤버 간의 갈등은 녹음에도 남아있으며, 다리엔소가 제시한 템포를 다른 악단원들이 바꾸는 테이크도 존재한다. 폴리토는 1940년에 악단을 떠났다.[1]
2. 3. 전성기 (1940년대 ~ 1950년대)
1940년 4월, 19세의 풀비오 살라망카를 피아니스트로 영입하면서 다리엔소 악단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살라망카의 화려한 연주 기법은 로돌포 비아지를 포함한 이전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섬세함을 더했고, 악단의 앙상블을 한층 더 완벽하게 만들었다. 특히, 2옥타브(오른손은 옥타브, 왼손은 단음)를 넘나드는 빠른 속도의 패시지는 큰 화제를 모으며 이 시기 많은 녹음에서 활용되었다. 엑토르 바렐라를 제1 반도네온 연주자로 발탁하고, "바리에이션의 음수를 속도에 맞춰 제한한다"는 전략을 통해 연주의 경쾌함을 더했다. 1930년대 녹음과 비교했을 때, 반도네온이 짧은 인트로에서 솔로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은 다리엔소가 바렐라에게 가진 신뢰를 보여준다. 이로 인해 바렐라는 고음역대만 연주하게 되어 "한 손 연주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다리엔소는 탱고의 평균 연주 시간을 180초에서 150초로 단축시켰다.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지만, 이러한 변화는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1940년대는 전통적인 탱고의 특징과 현대적인 감각을 모두 만족시킨 시기로 평가받는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SP 음반의 원자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아르헨티나는 전패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2. 4. 후기 활동 (1960년대 ~ 1976년)
1970년대에도 다리엔소는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앙상블이 헐거워지고 템포가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다.[8] 왕년의 속도는 되찾았으나 발음 자체가 즉물적으로 변했고, 현악기군이 뒤처지는 등 부자연스러운 침묵도 나타났다.[8]그럼에도 다리엔소는 후안 마글리오가 특기로 했던 아르메논빌(Armenonville)과 같은 고전곡을 1970년 8월 21일에 자신만의 스타일로 다시 써서 녹음하는 등, 마지막까지 고전 탱고의 후계자를 자처했다.[8] 1975년에는 RCA에서 마지막 10곡을 녹음하며 지휘 활동을 마무리했다.[8] 탱고계가 침체된 상황에서도 다리엔소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일선에서 활동한 명인이었다.[8]
다리엔소가 사망한 후, 에두아르도 로비라는 "''다리엔소가 죽었군, 그럼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어''"라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8]
3. 연주 스타일
다리엔소는 날카로운 스타카토와 리듬을 강조한 "다리엔소 스타일"을 끝까지 유지하여, 많은 후계 악단, 팬, 평론가들에게 깊은 인기를 얻고 있다.[7] 그는 아르헨티나 탱고에 강렬한 개성을 부여하여, 단순한 리듬 패턴이었던 탱고를 장르로 승격시켜 국제화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다리엔소 특유의 연주 방식 중 하나는 "'''소리 없는 리듬'''"이다. 이는 포르티시모(ff, 매우 세게)의 스타카토에서 갑자기 피아니시모(pp, 매우 여리게)로 전환될 때, 소리를 완전히 끊어 리듬감을 강조하는 기법이다. "라 쿰파르시타(La cumparsita)" (라 쿰파르시타)나 "El huracán" (엘 우라칸(태풍))과 같은 곡에서 이 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소리 없는 리듬"은 초기부터 다리엔소가 사용한 것은 아니며, 악단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확립된 표현이다. 1940년대부터 pp와 ff의 대비가 극단적으로 심해졌고, 1943년 11월 23일 녹음된 214번째 작품 "라 쿰파르시타"에서 이 "소리 없는 리듬"이 명확하게 나타났다.[8]
다리엔소 스타일은 고속 템포로도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멤버들의 컨디션에 따라 템포를 유연하게 조절했다. 로돌포 비아히가 있던 시절에는 템포를 극한까지 끌어올렸고, 그 이후의 피아니스트들은 비아지의 템포로 연주할 수 있는 것을 조건으로 고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이후, 다리엔소는 몇 마디의 즉흥적인 코다를 추가하고 차용 화음을 넣어 ff로 전주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코드 진행은 "차용 화음에서 피카르디 3도를 결정하고 도미넌트, 토니카"로 나타난다. 후안 폴리토는 여러 이유로 라 쿰파르시타의 장식음을 1963년 12월 10일 녹음 703번째 테이크에서 바꿔 연주했는데, 후대의 피아니스트들은 이 바뀐 버전을 선호하여 다리엔소 후계 악단들이 대부분 채택하고 있다.
다리엔소는 드물게 코믹한 표현이나 효과음을 사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950년 5월 15일 녹음 358번째 작품 Nueve de Julio에서는 권총 발사 소리가, 1968년 8월 27일 녹음 816번째 작품 Mi Japon에서는 멤버 전원이 "SA YO NA RA!"라고 외치는 부분이 있다.
4. 작품 및 헌정곡
다리엔소의 작품은 많지 않지만, El vino tristees, Pacienciaes 등이 알려져 있다. '리듬의 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El rey del compáses나 생일인 14 de diciembrees 등 헌정된 곡도 있다.[1] 다리엔소와 바렐라 악단만이 연주하는 곡도 있으며, 그 곡에는 돈 오를란도(Don Orlando)가 있다.[1]
5. 평가 및 영향
다리엔소는 강렬한 개성으로 아르헨티나 탱고에 큰 영향을 주어, 단순한 리듬 패턴이었던 탱고를 국제적인 장르로 승격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의 '다리엔소 스타일'은 날카로운 스타카토 리듬을 강조하며, 수많은 후계 악단, 팬, 평론가들에게 깊은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독특한 스타일은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7]
에두아르도 로비라와 같은 일부 음악가들은 다리엔소의 스타일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은 많은 팬들은 다리엔소를 사랑했으며, 그의 음악은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다리엔소 악단은 플루비오 살라망카가 활동하던 1950년대 초반을 제2의 황금기로 꼽는다. 이 시기에 일본에서는 제2차 탱고 붐이 일어났고, 다리엔소의 음악은 많은 일본인들에게도 기억되었다. 공식 통계는 아니지만, 이 시기까지 다리엔소 악단은 전 세계적으로 SP와 LP를 합쳐 1000만 장의 디스크를 판매한 것으로 추정된다.[7]
1964년에는 과르디아 비에하(고전곡) 중심의 LP "EL REY DEL ESTEREO"를 녹음하여 일본에서도 발매되었다. 1968년에는 일본 각지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비행기를 싫어했던[7] 다리엔소 본인은 후안 폴리토를 포함한 멤버들에게 연주를 맡겼다.
대한민국에서도 다리엔소는 1950년대 탱고 붐을 일으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6. 복각 현황
에레크트라 시대와 빅토르 시대의 전체 녹음은 1060곡으로 추정된다. 현재 CD로 구할 수 있는 음원은 1007곡 정도이다. 전집 CD-BOX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여러 음반사에서 다리엔소 악단의 음반을 복각하여 발매하고 있다.
7. 출연 영화
8. 디스코그래피
다리엔소는 1928년 자신의 악단을 결성하여 독특한 리듬을 강조한 연주 스타일로 인기를 얻었다.[9][10] 에레크트라 시대와 빅토르 시대를 합쳐 총 1060곡을 녹음했으며, 현재 CD로 들을 수 있는 곡은 995곡이다.[11][12] 2017년에는 추가로 12곡이 발굴되어 총 1007곡이 확인되었다.
다리엔소 악단의 전집 CD-BOX는 아직 발매되지 않았지만, 여러 음반사에서 그의 음악을 복각하여 CD로 발매하고 있다.
다음은 다리엔소의 디스코그래피 중 일부이다.
발매 연도 | 음반 제목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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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 El Triunfo / Unión cívica | |
1943 | Filicia / Vino triste | |
1944 | Qué importa | |
1953 | El Tarta / Se apagó una estrella | |
1956 | Tangos de todos los tiempos | |
1959 | Bien porteño | Jorge Valdéses와 Mario Bustoses 참여 |
1959 | Más grande que nunca | |
1959 | 후안 다리엔소(Juan D’Arienzo) | Alberto Echagüees 참여 |
1959 | D’Arienzo for export | |
1959 | 돈 후안, 거부할 수 없는 존재(Don Juan el Irresistible) | |
1960 | Adiós Chantecler | Jorge Valdéses와 Mario Bustoses 참여 |
1960 | Pasajera | |
1960 | 오로 데 레이 엔 라스 로사스 데 오르케스타(Oro de ley en las rosas de orquesta) | |
1960 | Tangos | |
1963 | 후안 다리엔소의 위대한 성공(Grandes Éxitos de Juan D’Arienzo) | |
1964 | 아카데미아 델 룬파르도(Academia del Lunfardo) | |
1964 | 옛 시절을 떠올리며 - 1권(Evocando el ayer - Vol. 1) | |
1965 | 옛 시절을 떠올리며 - 2권(Evocando el ayer - Vol. 2) | |
1966 | 17살의 왈츠(El vals de los 17 años) | |
1966 | 후안 다리엔소 - 알베르토 에차구에(Juan D’Arienzo - Alberto Echagüe) | Alberto Echagüees 참여 |
1966 | 후안 다리엔소 - 엑토르 마우레(Juan D’Arienzo - Héctor Mauré) | Héctor Maurées 참여 |
1966 | D’Arienzo는 후안 데 디오스 필리베르토를 연주한다(D’Arienzo interpreta a Juan de Dios Filiberto) | |
1966 | 후안 다리엔소 수출용 - 1권(Juan D’Arienzo for export - Vol. 1) | |
1966 | 옛날의 풍경(Estampas de antaño) | |
1966 | 내 슬픈 밤(Mi noche trisre) | |
1966 | 후안 다리엔소(Juan D’Arienzo) | |
1966 | 후안 다리엔소와 그의 오르케스타 티피카(Juan D’Arienzo y su Orquesta Típica) | |
1966 | 코리엔테스 에 이스메랄다(Corrientes y Esmeralda) | |
1967 | 후안 다리엔소의 최고(Lo mejor de Juan D’Arienzo) | |
1967 | D’Arienzo 수출용 - 2권(D’Arienzo for export - Vol. 2) | |
1967 | 옛 시절을 떠올리며 - 3권(Evocando el ayer - Vol. 3) | |
1967 | 어제와 오늘(De ayer y de hoy) | |
1968 | 바리오 레오(Barrio Reo) | |
1968 | 당신의 컴퍼스(Con tu compás) | |
1968 | 다리엔소 - 에차구에(D’Arienzo - Echagüe) | Alberto Echagüees 참여 |
1969 | 늙은 호랑이(Tigre viejo) | |
1969 | 아르메논빌(Armenonville) | |
1970 | 카르톤 후나오(Cartón Junao) | |
1970 | 옛 시절을 떠올리며 - 4권(Evocando el ayer - Vol. 4) | |
1970 | 좋고, 정당하고, 남성적인(Bueno, derecho y varón) | |
1970 | 나를 후안 탱고라고 불러요(A mí me llaman Juan Tango) | 아니발 트로일로와 공동 출연 |
1971 | 사칼라 치스파스(Sácala chispas) | |
1971 | 라 파냐라다(La Pañalada) | |
1971 | Bien porteño | |
1972 | 옛 시절을 떠올리며 - 5권(Evocando el ayer - Vol. 5) | |
1972 | 후안 다리엔소 1928(Juan D’Arienzo 1928) | |
1973 | 비에호 스모킹(Viejo smoking) | |
1973 | 로젠도의 술집(El bar de Rosendo) | |
1973 | 후안 다리엔소 - 알베르토 에차구에(Juan D’Arienzo - Alberto Echagüe) | Alberto Echagüees 참여 |
1973 | 돈 후안, 거부할 수 없는 존재(Don Juan el Irresistible) | |
1973 | 후안 다리엔소 수출용 - 4권(Juan D’Arienzo for export - Vol. 4) | |
1973 | Bien portado | |
1975 | 치루사(Chirusa) | Jorge Valdéses 참여 |
1975 | 옛 시절을 떠올리며 - 6권(Evocando el ayer - Vol. 6) | |
1975 | 옛 시절(Tiempos viejos) | |
1975 | 좋고, 정당하고, 남성적인(Bueno, derecho y varón) | |
1976 | 다리엔소 - 마우레의 위대한 창작물(Grandes creaciones de D’Arienzo - Mauré) | Héctor Maurées 참여 |
1977 | 밀롱가와 왈츠(Milongas y valses) | |
1977 | 좋고, 정당하고, 남성적인 - 2권(Bueno, derecho y varón - Vol. 2) | |
1978 | 댄서 콤파드(Bailarín compadrito) | |
1978 | 호텔 빅토리아(Hotel Victoria) | |
1979 | 영혼으로부터(Desde el alma) | |
1981 | 탱고의 왕(El Rey del Tango) | |
1981 | 후안 다리엔소와 그의 오르케스타 티피카(Juan D’Arienzo y su Orquesta Típica) | |
1984 | 15살의 왈츠(El vals de los quince años) | |
1988 | 후안 다리엔소 - 3권(Juan D’Arienzo - Vol. 3) (1940-1955) | |
1992 | 컴파스의 왕(El Rey del Compás) (1936-1939) | |
1996 | D’Arienzo 수출용 - 1권(D’Arienzo for export - Vol. 1) | |
1996 | D’Arienzo 수출용 - 2권(D’Arienzo for export - Vol. 2) | |
1996 | D’Arienzo 수출용 - 3권(D’Arienzo for export - Vol. 3) | |
1997 | 라 쿰파르시타(La Cumparsita) (1935-1939) | |
1999 | 40개의 위대한 성공(40 grandes éxitos) | |
2005 | 후안 다리엔소와 그의 오르케스타 티피카 1928-1929(Juan D’Arienzo Y Su Orquesta Tipica 1928-1929) | |
2005 | 15살의 왈츠(El Vals de Los Quince Años) |
참조
[1]
웹사이트
D'Arienzo - Tango has three things
http://www.todotango[...]
[2]
웹사이트
Juan D'Arienzo - tango.info
https://tango.info/0[...]
[3]
웹사이트
Tango Orchestra Biographies. Juan d'Arienzo
https://www.tangolog[...]
2010-02-10
[4]
서적
Un diccionario de films argentinos (1930-1995)
Editorial Corregidor
[5]
웹사이트
JUAN D'ARIENZO
https://web.archive.[...]
www.el-recodo.com
2019-03-19
[6]
문서
ダリエンソのディスコグラフィーはRCA以前のElectra時代をカウントするのかしないのかで見解が異なる。本項目ではRCA第一号をDesde El AlmaとHotel Victoriaの37785-A,Bと定め、第1曲、第2曲としてカウントしている。~作目はClub Tango ArgentinoのLPを参考にしている。
[7]
문서
メンバーを飛行機事故で失ったため。またこの時期の旅客機は信頼性が低く、事故死している音楽家は少なくない。
[8]
外部リンク
https://archive.is/K[...]
[9]
문서
レフコヴィッチのディスコグラフィー調査では1928-1929シーズンに56作を挙げているが、資料によって録音数に相違がある。
[10]
外部リンク
https://balazstango.[...]
[11]
外部リンク
https://tango.info/w[...]
[12]
外部リンク
http://users.telenet[...]
[13]
外部リンク
https://www.tango-dj[...]
[14]
外部リンク
https://www.tango-dj[...]
[15]
外部リンク
https://www.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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